◈ 의료자문, 의료자문 제대로 알고 대응하자
서류상으로만 이뤄지는 의료자문... 문제 없나, 개인정보도 중개업체에 무분별하게 공유 논란
의료자문 실시 기준, 강제성·처벌 없어 유명무실
‘의료자문’이 보험사와 계약자 간 불신의 원인이 되고 있다. 과다한 의료비 청구 및 보험사기를 걸러내기 위해 도입한 ‘의료자문’이 되레 보험사의 보험금 부지급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서다. 보험사들은 의료자문 절차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으름장’도 놓는 실정이다.
이 같은 자문 결과는 철저한 의료적 중립성을 담보하고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는 만큼, 선의의 피해자가 양산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보험사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다.
고금리·고물가 등 경기하락으로 인한 업황악화와 인구구조 변화로 손해율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의료자문’은 과다한 보험금 청구를 막을 최소한의 장치라는 것이다.
그러나 불투명한 절차와 더불어 개인정보가 특정 의료기관이나 중개업체에 흘러들어간다는 점에서 적잖은 논란을 낳고 있다.
<시장경제>가 의료자문의 ‘명과 암’을 되짚어봤다. 의료자문, 무엇이 문제인가 의료자문은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결정에 대해 계약자가 이의를 제기한 경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분쟁 해결절차의 하나로 볼 수 있다. 통상적으로 계약자는 의료기관에서 치료 후, 주치의로부터 진단서를 받는다.
해당 진단서는 보험사에 제출되고 서류심사를 거쳐 보험금이 지급된다. 그런데 보험사는 계약자의 보험금 청구 시 별도의 ‘의료자문 동의서’ 서명을 요구하게 된다. 물론, 이 같은 보험사의 요구에 의무적으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보험사측이 서명을 하지 않은 경우, 보험금 지급이 지연될 수 있다’고 안내하기 때문에 치료비 보장이 시급한 대부분의 계약자는 별 생각없이 동의하기 일쑤다.
보험사가 계약자측이 제출한 진단서 내용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에는 서명된 ‘의료자문 동의서’를 내밀어 ‘제3자 의료자문’ 수순을 밟도록 하는데, 여기서 많은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명목상으로 자문 의료기관을 보험사와 소비자가 합의해 정한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깜깜이’ 자문이 적잖아서다.
의료자문 형식도 환자가 직접 의사를 대면하는 것이 아닌, 서류상으로만 이뤄진다.
의료자문 책임주체가 불분명한 이른바 ‘유령의사’ 자문 의혹이 나오는 배경이다.
계약자는 ‘의료자문’ 결과에 따라 보험사로부터 보험금을 일부만 지급받거나, 심지어는 아예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특히 비급여로 인해 고액의 치료비가 청구됐을 시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어 더욱 보험 계약자들의 불신을 키우는 요인이 되고 있다.
계약자 입장에선 의료자문 결과에 따른 분쟁을 해결할만한 방안이 마땅히 없는 실정이다.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 절차를 ‘종결’ 처리한 경우에는 더욱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워진다. 결국 소송 외에는 방법이 없지만, 보험사를 상대로 개인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탓에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공시된 26개 손보사에 대한 지난해 연간 보험금 청구건수 합계는 총 7518만3635건이었고, 이 중 5만9026건에 대한 의료자문이 실시됐다. 보험금 부지급 및 일부지급 건수는 각각 4606건, 1만 3918건으로 집계됐다.
'유명무실' 가이드라인... 근본적 제도개선 필요성 ‘의료자문’과 관련한 소비자 분쟁이 끊이지 않자, 2021년 금융감독원은 보험협회와 함께 '의료자문 표준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한 바 있다.
의료자문 절차가 금융소비자들에게 불리하게 적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다.
해당 기준의 제3조(일반원칙) 1항에는 '보험회사는 의료자문이 보험금 부지급 또는 삭감 수단으로 남용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3항에서도 '보험회사는 의료자문 결과만을 근거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거나 지연하여서는 아니되며, 보험계약자 등이 제출한 의료기록 등을 바탕으로 공정하게 보험금 지급 심사 업무를 수행하여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한 제10조(의료자문 실시 대상)에 따라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 심사와 관련해 의료자문을 실시할 수 있는 경우는 ▲담당의사 소견 거부 ▲청구내용 불일치 ▲의학적 재검토 필요 ▲의학적 근거 미비 ▲전문 의학 정보 필요 ▲보험금 청구권자 요청 등 6가지에 해당한다.
2024.04.19 - [돈되는 모든 정보] - 보험사 의료자문 요청에 보험 가입자는 의료자문을 해야 할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기준은 강제성이나 별다른 처벌 기준 없이 단순 '권고'에 그치고 있어 실효성이 없다는 한계도 상존하고 있다. 결국 보험사 자체의 ‘자정작용’에 기대야 한다는 건데, 근본적인 제도개선이 동반되지 않는 한 해결이 요원할 것이란 견해가 중론이다. 김미숙 보험이용자협회 대표는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거절은 ‘지급사유’가 아닌, 보험약관에 따른 ‘면책사유’에 근거해야 한다”며 “면책사유 근거를 약관에 명시했다 해도, 계약체결시 설명의무 이행 여부를 보험사가 입증하지 못할 경우에는 면책사유에 따른 지급거절은 불가하다”고 강조했다.
‘의료자문’이라는 용어 자체가 잘못됐다는 시각도 있다. 보험사가 주장하는 ‘의료자문’은 보험약관상 보험금 지급사유 해당 여부에 대해 의료인의 의견을 참고하는 절차에 불과한 만큼, ‘약관자문’으로 명칭을 바꿔 소비자들이 혼동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견해다. 계약자가 보험사에 제출한 진료기록은 의료법 및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작성됐다.
따라서 이를 보험약관의 비전문가인 의료인이 의견을 내는 것은
의료법 제12조 1항 ‘의료행위 불간섭 원칙’을 위배하는 것이란 주장도 제기된다. 김 대표는 "보험사는 보험약관에 보험금의 지급사유와 면책사유를 분명하게 명시해야 한다"며 "보험금 지급사유 입증은 청구권자에게, 면책사유 입증은 보험사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보험사는 계약 체결시 보험사가 설명의무를 이행했다는 증거를 제시하고, 면책사유에 해당하는 근거를 입증해야 한다"며 "면책사유에 따른 지급거절은 3가지 조건인
면책사유·설명의무·입증책임 중 하나라도 이행하지 않을 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개인정보법·의료법 위반 소지... 커져가는 소비자 불신 ‘의료자문’ 절차에 대한 금융소비자들 불신을 키우는 또 다른 요인으로는 ‘중개업체’가 있다. 중개업체들은 손해사정사로 보험사로부터 의료자문 업무를 위탁받아 제휴 병원과 연결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러나 일부 보험사는 이러한 손해사정사를 자회사 형태로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본사의 임원급 인사를 자회사인 손해사정사 대표에 앉히는 ‘꼼수’도 횡행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보험 계약자에게 있어 ‘의료자문’ 절차는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과 다름없다는 얘기다.
업계 한 관계자는 “보험사와 중개업체인 손해사정사들이 의료자문 일감을 나눠먹는 경우가 있다”며 “예를 들어 보험사가 자문의에게 지급하는 자문료 중 30%는 중개업체 수수료로 떨어지는 것인데, 전체 규모로는 연 1조원에 달할 정도로 거대한 시장”이라고 말했다. ‘의료자문’ 절차의 적법성 여부와 관련해 빠지지 않는 부분이 ‘개인정보법’ 위반 소지다.
금융소비자연맹은 보험사들의 ‘의료자문’과 관련, 의료법과 개인정보보호법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불법행위로 규정하기도 했다. 실
제로 의료법 제17조(진단서등)는 ‘환자를 직접 진찰한 의사가 아니면, 진단서·검안서·증명서를 작성하여 교부하지 못한다’고 적시돼 있다. 보험사 ‘의료자문’은 엄밀히 말해 환자를 직접 진찰한 행위가 아니므로, 진단 및 증명의 효력을 인정하기 어려운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A 손해사정사는 “제3자인 중개업체에 보험 계약자의 진료기록부 등 개인정보를 넘기는 행위는 개인정보법 위반 소지가 크다”며 “보험사 외의 중개업체에게 개인정보가 무분별하게 공유되고, 해당 업체가 이를 통해 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개업체를 통한 자문의가 보험사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의료자문서를 작성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불공정한 계약”이라며 “의료자문은 어디까지나 서류상으로만 환자를 평가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보험금 지급의 절대적인 근거로 삼기는 어렵다”고 부연했다.
한편,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금융민원의 53%는 ‘보험민원’이었다. 민원 평균 처리기간도 2019년에는 30.1일이었지만, 지난해에는 62.5일로 두 배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신뢰수준에서도 대부업체를 제외하면 보험산업이 금융회사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https://www.meconom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6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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